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 ‘피아노의 시인’


리처드 클래이더만 내한공연

267개 골든 디스크, 70개 플래티넘 앨범

9,00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기록, 800여 타이틀곡 발표

199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로 기네스북에 등재

 

‘피아노의 시인’, ‘로맨스의 왕자’, ‘우리시대의 베토벤’등 많은 애칭을 가진 리차드 클레이더만이 30여년의 감성적인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 팬들을 찾아온다. 내한공연 때마다 매진을 기록하였고, 한국 가수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다시 내한하여 현악 앙상블과 함께 한국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일시: 2013년 4월 14일(일) 7시

- 장소 :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부주산)

- 주최 : 목포mbc, 목포시

- 티켓료 : R 88,000원, S 77,000원, A 55,000원, B 44,000원

- 예매처 : ticket.interpark.com, 한솔문고,

- e마트내(하나투어), E안경(차안다니는 거리)

 

리차드 클레이더만 Richard Clayderman

모국어 불어보다 악보를 더 능숙하게 읽은 신동

1953년 12월 28일에 태어난 Philippe Pagès(리차드 클레이더만의 본명)은 일찍부터 피아노를 접하게 되었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쳐 훗날 아들의 성공에 기반이 되도록 하였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이 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모국어인 불어보다 악보를 더 능숙하게 읽었다라고 말했다.

 

12살에는 음악원에 입학하였고 16살에는 일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 미래가 촉망되는 인재였다. 하지만 얼마 후에 고전음악에서 현대음악으로 전환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몇 명의 친구들과 록 그룹을 결성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힘들고 고달픈 시간들 이었다. 조금의 돈이라도 생기면 악기를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먹기 힘든 지경에 다다랐고 결국 17세 때 위궤양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클레이더만은 말한다.

 

그의 아버지가 위중해지면서 그를 재정적으로 도울 수 없게 되자 클레이더만은 생계를 위해서 반주자와 세션 음악가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그 일이 즐거웠고 수입 또한 그 때로서는 꽤 좋은 편이었다. 비록 그 일이 내가 될 수 있었던 탄탄한 기반이었음에도 나는 떠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재능은 곧 눈에 띄어 Michel Sardou, Thierry LeLuron 그리고 Johnny Halliday같은 프랑스 스타들의 반주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자신의 야망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에 그는 “난 정말 스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룹에서 연주 할 때와 반주자가 되면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posted by 해맑은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