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고  유달산에서 꽃 축제를 하니까..목포 근대역사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을줄 알았다.

그런데 들어가자 마자..북적 북적..아이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 오래된 목포의 사진이 걸려있는 액자를 보면서

아이들이 초..집중을 하는 모습..

뭔데..

오늘 목포가 무슨 날인가?

아이들이 손에 뭔가 들고 있다..

쪽지...

음.. 숙제구나...........

갑자기.. 이렇게 숙제를 내어주신 선생님이 대단스러워 보인다..

아이들이 목포에 있으면서 목포의 역사를 알수 있는 근대역사관을 찾게 만들다니..

선생님 최고^^

 

 

목포의 어원은 "길목이 좋은 포구" 라는 것에서 "목포"라고 불렸습니다...

일찍이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던 곳이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물아혜군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안군으로...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답니다...

 

목포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생겨났는데...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때 목포의 고하도에 수군기지를 설치한 적이 있어서...

그 전설에 관한 내용도 유명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1897년, 우리나라 4번째로 개항을 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일본이나 중국과의 무역을 전담하게 되었고..

일제시대에는 꾀 손꼽히는 도시로 발전하게 되죠...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일본과 중국등과으 무역이 끊기고...

전남의 수위도시에서 2등도시로 전락하게 됩니다...

또한 한국 군사정권때는 전라도라 하여 그 눈 밖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일제시대 당시의 인구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비운의 도시이기도 하죠...

 

21세기 들어서는 목포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는데요...

J프로젝트나 서남해안 발전사업 등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는 추세입니다...

또한 전남도청이 목포 부근으로 이전됨에 따라 더욱 기대가 높아지고 있구요...

 

목포의 유명한 유적, 유물로는 고하도의 강강술래, 삼학도, 갓바위 등이 있구요...

'목포의 눈물' 을 부른 가수 이난영과...유달산...

또한 영화 '사랑의 묵시록'의 배경이 되었던 공생원...

 

특히 학교나 교회들은 일제시대에 세워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역사적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 개인의견 펌 -

 

 근대 역사관

구 도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정근대역사관은 1920년 6월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근세 서양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한국역사의 자각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이라고 하네요~

 

 

 

 사진으로 보는 목포의 모습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수 있었답니다.

 

 

 

 세쌍둥이예요^^

너무  반가워서.. 아이들이 이쁘죠^^

아빠는 너무 뿌듯할것 같아요^^

이런 기분^^

어떤기분일까..

 

그러고 보니.. 목포에서 두쌍둥이..아가씨들도 봤는데..

자전거 도로에서^^

오잉..우연일까..

 

 

 

 

역사 공부 다시 하는 기분..

그런데..아련히..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이야기인줄..알아듣겠더라는..

한두가지 알려주고 왔지요^^ ㅎ

제발..내가 이야기 한것이 정답이기를 바라면서.. ㅎㅎ

 

 

 아이들의 모습이 주말에 교복입고 가방메고.. 그리고 손에는 선생님이 내어주신 숙제들고.

서로 빨리 답을 맞추고 싶어서.. 사진을 열심히 보는 모습이..

나름.. 부러웠답니다.

나.. 저...시..절로.... 돌아갈수 있다면.....................

나도 너희들 처럼.. 가방메고.. 다시..

그나이로 돌아가서 공부하고 싶다규~~~~~~~~~~~~

너희들은 그런 마음...모르겠지?

 

 그 때 그 시절.. 목포의 역사는 지난 밤.. 택시를 타면서 택시 기사 분들이 해주신 말씀이 너무 귀에 쏙 들어와서..

 마음이 좀 그랬다..

 어디가나.. 통일되지 않는 마음..

그런 마음때문에..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건 아닌지..

요즘 선거철이라서 더 그렇겠죠~

다시 뒤돌아 봤을때..

내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런 마음..

 

 

 

 

 

 

 

 

오늘의 역사 공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해 알아볼까..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같이, 일본정부의 직접적 지배하에서 그들의 특권에 기초한 독점적 특수회사이다.

일제는 1908년 의회에서 동양척식회사법을 통과시키고, 이를 한국정부에 강요하여 1000만 원 자금으로 한국에서 척식사업을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일제는 이에 일정기간 상당액의 보급을 시행하고 한국정부는 사업용지의 일부를 제공하기 위하여 국유지를 출자함으로써 한국이 자원개발 식산진흥을 담당하게 하며, 일본으로부터 선량 근면하고 경험이 풍부한 농민을 이식하고 진보된 농법을 시범함과 동시에 기업가에 대해서도 이자가 싼 자금을 공급하여 식산사업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설립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을 식민지화할 목적으로 창립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회사가 설립되자 한국정부로부터 토지 1만 7714정보를 출자받고, 1913년까지 토지 4만 7148정보를 헐값으로 매입하였다.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이후인 1920년 말에 회사 소유지는 경작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만 7천여 정보에 달하였다. 이와 더불어 일제는 국유지를 강제로 불하하여 막대한 면적의 산림지를 가로채어, 1942년 말 16만여 정보의 임야를 소유하였다.

이와 같이 강제로 빼앗은 토지를 소작인에게 빌려주어 50%가 넘는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고, 영세 소작농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고리를 추수 때 현물로 거둬들였다.

또한 그 소유지는 일본인 이주자에게 싼값으로 양도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의 직영지 면적은 점차 감소되었으나, 1937년 동척이 직접 경영한 경작지 면적은 6만여 정보에 달하였다. 동척의 농업이민정책은 경제적인 목적보다 정치적인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일본은 각종 특혜를 주고 1910∼1926년에 17회에 걸쳐 일본인 이민 희망자 약 1만 명을 엄선하여 조선침략의 담당자로 활용했다. 이들 이주민은 경기·경상·전라·황해·충청도에 가장 많았는데, 그들은 조선민중을 착취 압박한 일제의 대변자이며 앞잡이가 되었다. 이에 따라 1926년까지 조선인 빈농 약 29만 9천이 토지를 상실하고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한편, 동척은 조선민중에 대한 가혹한 착취로 세력이 확대되자, 1917년 회사법을 개정하여 본점을 도쿄[東京]로 이전하고 조선에만 국한하던 침략 및 착취의 대상과 범위를 몽골·러시아령 아시아·중국·필리핀 및 말레이반도까지 확장시켜 대륙에 대한 침략자금의 공급, 기타 척식사업을 경영하였다.

동척의 사업지역이 중국의 둥베이[東北]·네이멍구[內蒙古]로 확대되었으나, 조선에서의 동척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야기한 이후 일제가 한반도를 그들의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중공업에 집중 투자하자, 동척도 광공업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전기·탄광·제철 등 각 분야에 투자하였으나, 여전히 동척의 사업 중심은 조선의 농업에 대한 수탈이었다.

1920, 1930년대 농민의 격렬한 소작쟁의는 동척의 조선민중에 대한 수탈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또한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 열사가 동척을 기습하여 폭탄을 투척하는 사건은 바로 이러한 민족적 증오의 한 표현이었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뿌듯하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래.. 좋아보여~

마음속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겠지만..

 여기 근대역사관도.. 그런 시기를 지나온 역사속이라서 그런지..

이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을 볼수 있음에..

목포에서 이렇게 남아 있는 유물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누구나.. 다.. 역사를.. 창피한것도..자랑스러운것도..

감추지 말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

 

 

 

 목포는 말그대로 항구입니다^^

그것도 아주 멋진 항구..

 

 

금융도시 목포..

택시기사님의 바람대로..

모두가 웃고 즐거워하는..그런 목포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ojoss/15864156

posted by 해맑은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