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사의 산 증인 舊)湖南銀行 木浦支店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 조 대 형

 

 

 

 

 

<구)호남은행 목포지점 측면>                                            <구)호남은행 목포지점 전면>

 

유명한 역사학자 E.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역사의 문맥이 가득 드러나는 곳이 목포(원도심)이다. 전라도 사람들에게 목포는 아련한 슬픔이 배여 있는 곳이다. 이난영의 ’목포의눈물‘의 애잔한 가락이 가슴 밑바닥에 여울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현대사의 굴곡이 깊게 패어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목포는 1897년 개항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목포진‘이 설치돼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기지로서의 역할을 제외하고는 작은 포구에 불과했다. 일제가 식민지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목포를 네 번째 개항장으로 낙점하면서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근대사 목포는 국내에서 4번째 개항되었으며 근대문물이 유입된 지나온 발자국이 짙게 남아있는 도시!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새롭게 성장된 유서 깊은 항구도시 이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수탈의 기점 역할을 했던 눈물의 도시 목포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도심의 모습으로 지금도 개항장 일본인 거류지 중심으로 영욕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근대 건축유적이 잘 보존되어있다. 오늘날 목포의 새로운 관광자원인 “근대문화유산의 보고” 1번지가 바로 목포이다.

근대문화의 현장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 합니다. 지금부터 근대역사도시 목포로의 시간여행을 함께 떠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건축은 한시대의 산물로 그 시대를 살아온 인간 삶의 흔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 건축 유적을 통해 근대사와 민족수난의 역사와 더불어 목포 변천사를 대변하는 근대건축물 중 하나, 개항도시 목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융계 건물인 ‘구)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등록문화재 제29호로 등록된 본 건물은 이 지역 산업 발전을 위해 일본 자본에 대항한 호남지역 인사들에 의해 이 지역을 토대로 당시 호남부호였던 현준호, 김상섭, 김병로 등 당시 돈 150만원 자본금으로 1920년 10월 2일 설립되었다.

 

현 건물의 건립은(소재지:전남 목포시 상락동 1가 10-2) 대지 427평 건평 256평의 2층 벽돌 건물로 1929년 11월 11일 신축이전 되었다. 목포항이 개항된 후 목포는(쌀, 목화, 소금)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하면서 한때 전국3대항, 남․북한을 합쳐 6대도시로 불릴 만큼 크게 번창하였다. 당시 1930년대 목포 인구 56,000여명, 전국무역량 6위로 부상할 수 있는 목포경제 후견자로서 젖 줄기 역할을 수행한 본 건물은 82년의 역사, 지금도 건립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건축 공사비는 약 22,000원(당시화폐).

 

건물의 특이한 점은 건물 가운데 기둥이 전혀 없이 건립되었다. 현대 건축양식 처럼 철근 콘크리트 스라브 건물 이라면 가능 하겠지만 건물 중앙에 기둥이 전혀없는 건축 기술은 실로 감탄 할만하다 일본인 건축가로 여겨진다. 이는 상량문에 나타나 있다.(대들보 상량문귀 건축가 日本 森安照) 또한 오랜 세월이 흐르면 건물 뒤틀림(각도편차)이 나타나는데, 구)목포일본영사관 건물보다 편차가 적었다 한다. 현재 외벽 타일 벽돌이 탈색되거나 파손, 또는 금간 곳 하나없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근대 건축물의 최고 유적임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리고 빗물받이 및 물받이 초롱(재료 황동)은 전혀 부식되지 않아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최근 모양이 초라하다하여 견고한 스텐레스로 교체되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지반 역시 암벽(반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균열이나 침하, 틈이 전혀 없으며 외벽 타일은 검은색 계열 붉은색으로 러시아 産으로 타일 한 장 한 장 종이로 포장되어 수입되었다고 한다. 튼튼하고 견고함을 실례로 들어보자.

 

6, 25 사변당시 북한군 장갑차가 건물을 들이 받았으나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장갑차가 대파되었다고 한다. 또한 외벽은 총탄 세례를 받았으나 타일벽돌은 파손은 없고 흠집만 남아 질곡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경찰서장이 허가한 車庫건축 허가증>

 

 

역사적 의의는 당시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 지점이 있었으나 이러한 특수 은행만으로는 보편적인 금융을 기대하기가 혼란한 처지로 설립 되었는데 1933년 7월 동래은행을 흡수 합병하게 되므로서 영업지역을 경상남도 지역으로까지 확대하고 아울러 동래, 거창, 영광, 담양 등지에 까지 지점을 설치하여 영업망 확대실시로 자본금 200만원으로 늘려 대 은행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이에 일본은 1928년에 신 은행령을 발표하고 민족계 금융기관에 대한 일본인 자본의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식민지 금융정책을 강화하면서 민족계 은행의 통합을 강요하였으나 호남은행은 이 같은 식민지 지배당국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고 독자 운영하다가 총독부의 일본인 자본참가를 거역하고 일본인 직원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東一은행과의 통합을 강요한 결과 마침내 1942년 5월 1일 합병 당하게 되었다.

 

그 후 1943년 7월 26일 합병으로 ‘(주)한성은행’ 목포지점이 1943년 10월 1일 신설 합병으로 본 은행은 ‘조흥은행’ 목포지점으로 다시 출발하여 민족계 은행으로 그 계보를 이어 시중은행 최고 의 역사와 전통의 은행으로 자리매김 하였으나 2005년 ‘신한은행’으로 합병당하는 비운의 운명적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현재는 신한은행 소유로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호남은행은 일본의 식민자본 이식에 맞서 설립한 은행으로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주자본과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순수 민족 자본으로 설립함으로써 근대화의 자주적인 모습을 어느정도 견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29호 등록된 표시>

 

 

건축사적 의미로는 구도심의 번화가인 오거리에서 선창가 쪽 100여m 되는 삼거리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개항 역사와 더불어 목포 근대사의 상징이 되는 당시 번화가인 쇼핑거리가 시작되는 곳으로 영욕의 근대사의 상징의 거리 이기도하다. 오거리는 신파의 거리로써 일본인 거류지와 조선인 거주지 접경지역으로 양측간 분쟁이 자주 일어났던 지역이다. 현재 본 건물 1동과 그 뒤로 연결된 부속건물(화장실, 식당, 서고, 지하창고등) 건물은 단순한 장방형의 2층 건물이며 외부는 검은색 계열의 붉은색 타일로 마감되었다. 하단(기단부)은 1.1m 높이의 석조로 마감되었으며 내부 2층으로 오르는 목조 계단은 안타깝게도 최근 엘리베이터로 교체되어 장식된 문양의 계단은 사라지고 말았다. 정면 중앙과 양측면에는 짧게 포치를 두었는데 특히 양 측면 출입구만은 3단 몰딩한 화강석 처리, 창문은 정면에 4개 측면 각각 3개의 수직창이 2층까지 설치되었으며 안쪽으로 2단을 접어 긴 건물의 입체감과 함께 수직성이 유난히 드러나 보인다. 1,2층 사이의 외벽에는 장식의 방형 문양띠가 수평으로 둘러져 있다.

정문에는 지금은 현대적 간판이 걸려 있지만 그 안에는 예전에 음각된(주식회사 조흥은행 목포지점(株式會社 朝興銀行 木浦支店) 글자가 새겨져 있다.(그중 조흥 두 글자는 원래 호남이었던 것을 후에 바꾸어 놓음)

 

이 글씨체는 한자 오체 중 하나인 해서체다. 이 글씨는 타계한 제주도 출신 서예 대가이신 소암 고 현중화 서예가의 글씨로써 특이한 점은 글자 중 浦(′)마지막 획이 누락되어 있다. 목포지점이 번창하면 찍겠다는 설이 있고, 나라가 독립하면 찍겠다는 설이 있는데 아직까지 그 1획(점)은 빈 그대로 남아있다. 비어있는 획은 오늘날 무슨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가 자주성을 지킨 호남은행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본 건물은 개항도시 목포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며 건축사적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한국 근대 건축 저변확대에 큰 역할과 함께 개항 역사도시 목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금융계 근대 건축 유적으로서 금년 신축이전 82주년이 가까워오는 인생 나이 산수(傘壽)가 지난 세월만큼 고풍스러운 자태에 늠름히 버티고 서있는 위용은 한국 금융사의 산 증인이며 버팀목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해방 된지 66년 항구도시 목포는 일제 호남수탈의 창구로서 영욕을 간직 한 채 역사의 유산들을 걸머지고 있다. 개항 역사도시 목포는 본 ‘호남은행’을 중심으로 목포최초 서양식 건물로 주목 받고 있는 ‘구)목포일본영사관건물’(사적 제289호)과 일본 건축 양식인 일본사찰 동본원사 목포별원 그리고 학교 건물 등 많은 등록 문화재로 등록된 근대 건축물과 그 외 일제 가옥 등 근대 유적이 즐비하게남아 한국역사의 자각의식을 불러 이르키는 역사성 시대성 있는 상징적 건물로써 또한 종교 시설물 등 개항 도시로써 역사성 정체성 확보로 근대사와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더불어 목포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가히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라 할만하다. 이러한 근대 건축유산들이 새롭게 재해석되고 도시발전의 요소로 자리매김 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역사의 한 획을 그은 문화유산의 산물 목포의 모습이다. 그래서 목포는 항구다.

posted by 해맑은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