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라남도 문화관광해설사 김 연옥

 

 

우리 목포는 1897년 10월에 개항하였으며 일찍이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물아혜군이라 불리웠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안군으로 고려시대에는 물량군 또는 무안군으로 불리웠습니다.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목포가 제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세종21년 만호진이 설치된 때부터입니다.

목포는 부산 인천 원산에 이어 4번째로 개항을 했습니다.

목포라는 이름은 고려사라는 역사책에서 처음 나오는데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나무가 많은 포구라 하여 목포라 불렀다고 하고 목화가 많이 나는 포구라하여 목포라는 설도 있고 서해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길목이라 하여 목포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곳 국립 해양문화재연구소는 물,바다 사람,배,꿈,삶 그자국들이 어우러진 국내 유일의 해양 박물관입니다.

바다의멋과 예술이 살아있는 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는 1994년 12월 개관하여 2009년 4월 27일 국립 해양 유물 전시관에서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로 기관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이는 수중문화재가 집중분포된 서해안 지역의 수중문화재 조사 수요급증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한것입니다.

여기 전시관은 해저에서 건져올린 옛배와 다양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랜 해양 역사흔적을 보존전시함으로서 뿌리 깊은 해양문화와 전통을 일깨우며 우리나라의 해양문화사를 쉽게 이해할수 있는곳입니다.

1전시실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 전시실은 세계 수중문화재 발굴역사와 우리 나라 바다에서 발굴한 다양한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완도선은 전남 완도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도자기 운반선입니다. 우리 바다 곳곳에서는 옛 배와 수많은 문화재가 발견되고 있으며, 이 문화재들은 우리 역사 복원을 위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수중문화유산이란 바다나 강·호수·늪지 등 물에 잠겨져 있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말합니다.

수중문화유산은 육상의 문화유산보다 보존이 잘 되어 한시대의 문화현상 단면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중문화재와 수중고고학에 대한 관심은 1976년 신안해저문화재 발굴조사를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신안해저발굴 이후, 10여건에 이르는 수중문화재 발굴조사는 우리 해양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완도해저 발굴조사

1983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 바다에서 키조개 채취작업을 하던 잠수사들이 몇 점의 옛 그릇을 건져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발견은 수중유물에 대한 관심을 한껏 높여준 신안해저 발굴이 끝나 갈 무렵이었으며, 또 한번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문화재청(당시문화재관리국)은「완도해저유물 발굴조사단」을 조직하고 수중발굴조사( 1983 - 1984년)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해저에는 수 많은 유물을 가득 실은 옛 배 한 척이 침몰되어 있었습니다.

침몰된 배는 심하게 부식된 상태였지만, 특히 3만여 점의 도자기는 보존상태는 양호했으며, 이 외에 솥, 청동그릇, 숟가락 등의 선원생활품과 도구들도 남아 있었습니다.

완도 앞바다에 침몰한 이 배는 10톤 규모의 외돛배이며, 11세기 중·후반경 해남 진산리에서 그릇들을 싣고 항해하다가 완도 어두리 앞바다에 침몰한 고려시대 상선(商船)이었던 것입니다.

완도해저 발굴의 성과는 11세기 후반경 고려 도자기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자료의 부족으로 연구가 부진했던 '우리배(韓船)'의 역사와 그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학술자료를 제공한 점을 들수 있습니다.

완도선의 유물

완도선에는 30,701점이나 되는 유물이 실려 있었다. 고려청자가 30,645점, 잡유 26점, 토제품 2점, 철제품 18점, 목제품 9점, 석제품 1점 등입니다.

완도해저 고려청자는 11세기 후반경에 만들어진 녹청자계통의 도자기입니다. 도자기의 특징과 발견된 지점으로 보아 실생활용 그릇으로 추정됩니다. 도자기 종류는 대접과 접시, 완, 잔 등이 대부분이며, 청자광구병(廣口甁) 103점과 청자매병 11점, 그리고 청자장구 2점, 유병(油甁), 호(壺), 발(鉢) 등이 있습니다. 도자기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진산리 가마터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녹청자 생산지로서, 1983년 가마터 104기가 조사되었습다.

해남 진산리는 내륙과 바다, 영산강의 자유로운 해운교통 조건을 갖추고 있어 도자기 수송에 매우 유리한 지역입니다. 완도선은 이곳에서 도자기를 가득 싣고 진도와 해남 땅끝, 완도 본섬을 지나 남해안으로 항해하다 약산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음은 2전시실인 신안선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하면서 건물밖의 바다를 보게 되겠습니다.

이건물의 특징적인게 통유리를 이용하여 바다를 볼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바로 밖의 바다에는 옛어로 전통 방법들이 실제로 설치되어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습니다.

덤장,게맥이,죽방렴

 

그럼 제2전시실을 관람 하겠습니다.

 

2전시실

-700년전의 약속

이 전시실은 700년 전 고려해저에 침몰한 중국 무역선과 다양한 무역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신안선은 1323년 여름, 중국에서 일본으로 항해였으며, 전남 신안해저에 침몰된 불운의 무역선입니다. 배에는 수많은 무역품이 실려 있었습니다.

 

 

신안선은 중세 중국과 일본 간의 무역선입니다.

14세기는 우리나라는 고려왕조, 중국은 원(元)왕조, 일본은 가마쿠라막부시대로서, 활발한 교역이 이뤄지는 시대였습니다.

1323년 여름, 신안선은 당시 중국의 무역항 경원(慶元 ; 현재의 영파)에서 수만점의 무역품을 싣고 일본을 향해 출항하였습니다. 최종목적지는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사찰 동복사(東福寺)였습니다. 서남계절풍을 이용해 고려해역을 지나는 국제 교역항로인 남로(南路)를 따라 항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약 700년후 신안선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전남 신안 해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마도 신안선이 항해 중 태풍을 만나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표류하다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물 분석결과, 신안선에 승선한 사람들은 중국인 선원과 일본인 무역품 주인 또는 그 대리인 등으로 추정됩니다.

침몰선은 발견지역을 따라 신안선이라 부르고 있으며, 700년간의 역사적 비밀은 배와 함께 발굴된 유물을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항해시기와 국적을 알려주는 유물들

 

 

항해시기와 국적을 알려주는 유물들

 

다음은 제3전시실입니다.

 

3전시실

자산어보를 찾아서

 

 

자산어보와 황금어장 '서해'

 

우리나라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세계적으로 광활한 갯벌을 가진 해역으로서, 다양한 해양 수산 생물이 서식하는 황금어장입니다. 자산어보는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전(丁若銓 ; 1758~1816년)이 서남해의 섬 ‘흑산도’에 유배왔을 때 저술한 책입니다.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천주교인들을 박해한 신유사옥(辛酉邪獄 ; 1801년) 때 유배되어 1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고, 흑산도 부근의 우이도(신안군 도초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산어보는 해양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자산이란 흑산(黑山)과 같은 뜻으로,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사용했던 이름입니다. 정약전은 바다-섬-섬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생활하면서 그의 실학정신을 펼쳤습니다. 조선과 중국의 여러 문헌을 읽고, 물고기를 직접 해부하면서 생김새부터 습성·분포·효능·요리법까지 다양하게 연구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물고기 사전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 1803년) - 조선시대 유명한 문장가 인 김려(1766~1821년)가 쓴 남해안 물고기 사전입니다. 우해는 진해(鎭海)의 별칭으로, 김려는 경남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진해 연안의 물고기의 형태와 습성, 효능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자산어보(玆山魚譜 ; 1814년) - 조선시대 실학자‘정약전’이 쓴 해양수산생물 사전입니다. 이 책은 흑산도 주변 해역의 물고기 약 200종류를 소개하였고, 김려의‘우해이어보’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 1820년) -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1764∼1845년)가 쓴 책으로, 물고기의 한글과 한자 이름, 생태·요리·맛까지 기록하였습니다. 서유구는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도 다양한 물고기와 고기잡이법을 소개하였습니다.

 

4전시실

이 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우리 배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배는 선사시대 바위그림과 같이 고기잡이 도구이자 바다를 건너 이동하는 획기적인 도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고대부터 바닷길을 개척하였으며, 이렇게 오랜세월 축적된 지혜와 기술이 우리 전통배 '한선'입니다.

 

 

한선이란

 

우리 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에 살고 있으므로 먼 옛날부터 강과 바다에 삶의 터전을 일궜으며, 고유한 해양문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 땅에 정착하여 수 천년 동안 바다를 개척하고 강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땅과 바다 조건에 맞는 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배를 만들어 사용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일일 테지만, 구체적인 역사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사인들은 처음엔 쉽게 구할 수 있는 통나무에 올라타고 손으로 물을 젓거나,뼈나 나무로 노를 만들어 물을 저었을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 개의 통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들어 타기도 했습니다. 차츰 더 편리하고 안전하며, 쓰임새 있는 배를 갈망하여 온 결과 교통, 화물 운반, 고기잡이, 먼 항해, 전쟁 등 쓰임새에 맞는 갖가지 배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어떤 형태의 배를 만들어 사용하였을까?'

아직 그 내용에 대하여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는 단계지만, 몇몇 고고학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한선(韓船)이란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환경에 알맞도록 발전하고 이어져 내려온 고유한 우리 배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특히 우리 한선은 배밑이 평평한 평저형선(平底型船) 구조를 고집합니다. 이는 수심이 비교적 낮은 우리 해안의 환경 특성을 고려하여 배가 안전한 항해와 정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선조들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전시실을 관람 하셨고요,우리나라 해양역사와 문화 전통배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 밖으로 나가시면 야외 전시장에

새우잡이인 멍텅구리배,가거도 멸치잡이배,제주도 떼배등 실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들려서 보시고요, 더불어 주변에는 자연사 박물관,남농기념관,갓바위,갓바위해상보행교,평화광장,물과 음악 그리고 빛의예술 춤추는바다분수등 볼거리가 아주많습니다, 남은시간 좋은 시간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osted by 해맑은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