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도 부활을 노래하다

 

                                                                               문화관광해설사 이옥희

 

 

 

 과거의 삼학도  

 복원된 삼학도 


 

  자연과 사람보다 정겨운 노래로 먼저 가슴에 자리 잡은 도시가 있습니다. 어디냐구요?? 목포입니다. 유달산과 영산강 삼학도의 항구도시 “목포”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그 속에 겹겹이 쌓인 이야기에 시대의 추억이 쌓인 곳, 호남선의 종착역 바로 목포입니다.

그 노래 속에 삼학도 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삼학도에서 하루를 즐겁게 보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목포는 땅이 좁아 약 60~70%가 간척 매립지 인데 저기 목포 앞바다 건너편에 세 개의 섬 삼학도도 보시는 것처럼 옛날에는 물에 잠겨 있던 섬이었지만 현재는 교량과 수로를 새로 만들어 복원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을 볼때 삼학도는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었던 국유지로 1439년에 조선의 군사 요충지 였던 목포진의 땔감나무 공급지 였으며 일제 강점기 한일 합방 당시에는 고하도와 더불어 목포진 관리자인 김득추란 사람에 의해 1895년 개항 2년전 일본인 삽곡용랑의 손에 넘어간 이른 바 역사적인 삼학도 암매사건이 있었으나 광복 이 후 조선의 딸으로 복귀되었고 삼학도가 훼손이 된 것은 일본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삼학도가 원형을 잃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 50년대, 60년대의 상황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시대는 그들의 근대화 건물을 짓기 위한 체석작업으로 인해 삼학도의 부분적인 훼손이 있기는 했지만 그대로 세 개의 섬으로서의 원형은 유지 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도심이 팽창함에 따라 ‘삼학도 매립’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졌으며 1956년 삼학도 제방 축조에 대한 계획 수립이 구체화되었는데 1957년 2월 당신 우리 나라 해무청은 “ 목포항을 부산의 다음가는 대항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삼학도 축항 공사계획을 확실히 진척시켜 대항구의 구현을 바라게 할 것“이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 삼학도 매립이 시작되어 1961년에는 대삼학도와 용해동 갓바위를 잇는 방조제가 쌓였고, 그리고 1965년에는 세 섬(대삼학, 중삼학, 소감학도)사이의 매립공사가 실시되어 삼학도는 1974년에 섬으로써 형태를 완전히 잃어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방공사가 이루어지고 나서 부작용 중 하나로 목포의 상징이였던 삼학도는 현재의 목포진의 터 밑에 자리하던 휘파리 골목의 홍등가가 도심에서 밀려나 속칭 엘로우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어촌의 전형적인 밀집 지역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도 당시의 큰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한 삼학도의 역사를 볼 때 실제 목포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수 있었던 시기가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목포시민들이 삼학도에 강한 애착을 지니는 이유와 삼학도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할수 있는 시기는 광복 직후부터 50년대 후반까지로 볼수 있습니다.

이 시절에는 단오때만 되면 삼학도에서 씨름대회를 비롯해서 난장축제가 벌어졌었는데, 그때가 목포시민들이 피부로 접할수 있었던 삼학도에 대한 추억의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면 이처럼 실제 경험보다 삼학도가 지니는 정서적인 상징성이 못포 시민은 물론 우리 국민들에게 강항 인상을 남기게 된 이유는 1932년 일제 강점기의 설움의 맥을 같이 하여 이난영이 불렀던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사에 등장하는 삼학도라는 단어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광복 이후 삼학도의 운명은 마치 목포의 운명처럼 다가왔으며, 섣부른 매립으로 인해 제 모습을 잃어버리는, 그리고 홍등가가 자리하게 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삼학도는 주로 목포사람의 애완이 담긴 것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호남의 설움이나 목포의 소외 같은 정서가 삼학도와 함께 목포사람들 가슴깊이 인식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학도라는 명칭의 유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달산 장수와 세 처녀의 사랑에 관한 전설 속 배경이 깔려 있으며 세 처녀의 혼이 변해서 세 개의 섬이 되었기 때문에 삼학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학도는 현재 부활을 노래 하고 있습니다. 현재 추진중인 삼학도 복원화 사업은 목포 사람들에게는 어떤 자신감의 회복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학도는 또한 사람들의 꿈이요 미래였습니다.

현재 복원중인 삼학도는 3만평의 면적으로 수로를 만들어 삼학도를 재현하고 주변의 교량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난영 공원, 어린이바다과학 체험관, 넓은 공연장과 2009년 7월에 준공된 요트 마리너 시설은 요트세일링을 하기에 최고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으며 유달산의 낙조와 흰색의 요트가 어울어진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도심의 생활 공간에 인접 서남권 최고의 마리너 시설로 평가 받고 있으며 내항어선의 북항 이전계획에 따라 삼학도 내항을 2019년 까지 단계적으로 600여척의 규모의 요트전용항으로 탈바꿈 될 계획이다.

 

 

 목포 요트마리나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삼학도 는 과거의 삼학도가 주던 우울함과 암울함을 벗어 목포의 희망을 노래하는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그 문화는 바뀔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posted by 해맑은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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